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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름이 깊어져 가면 부엌의 공 국가장학금 대출 기는 눅눅해지고 숨이 조금씩 짧아진다. 그때 어머니는 애호박을 꺼내셨다.
칼등으로 톡 두드리며 단단함을 살피고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뽀얀 속살이 드러난 연둣빛이 하룻낮 땀을 대신 닦아주는 것 같았다. 소박한 모양. 담백한 맛. 그 안에는 오래 묵은 지혜가 고요히 쌓여 있었다.
애호박의 고향은 바다를 건너 멀리 중남미다 스타크레디트 . 조선 중기쯤 우리네 밭으로 들어와 처음엔 저장이 좋은 늙은 호박으로 키웠다. 세월이 흐르자 여름철 입맛을 살리는 부드러움이 사랑을 받았다.
애호박은 별개의 이름과 자리를 얻었다. '음식디미방'에도 흔적이 선명하다. 국과 전. 나물과 죽. 여러 모습으로 밥상에 올랐다. 단맛과 수분이 고르게 섞여 소화가 편했고 노약자와 아이에게 특히 좋 대부업체대출 다고 전해졌다. 더위에 지친 몸을 식혀주는 제철의 은혜였다.
지금도 그 존재감은 변하지 않았다. 된장찌개로 끓이고, 들기름에 살짝 볶고, 소금간으로 절여 부침개로 지져낸다. 시장에 나가면 어디서든 쉽게 만난다. 익숙함이 주는 안심이 있다.
약선에선 애호박의 맛은 달고 성질은 평한다고 했다. 비위에 들어가 열을 가라앉히고 프랜차이즈창업대출 습기를 몰아낸다고 했다. '본초강목'은 갈증을 덜고 이뇨를 돕고 열사병을 막고 소화를 촉진한다고 적었다. 몸에 열이 많아 소변이 막힐 때. 몸이 무겁고 쉽게 피로할 때. 죽으로 끓여 먹으면 낫다 했다. 단 것과 감과는 함께 쓰지 않는다는 경계도 남겼다.
옛사람의 경험은 대개 이유가 있다. 속을 거칠게 자극하는 조합을 피하라는 말이다.
원리금균등상환 중도상환 애호박은 수분이 90%를 훌쩍 넘는다. 한입 베면 입안이 맑아진다. 비타민 A와 C. 엽산과 칼륨. 식이섬유도 넉넉하다. 면역을 북돋우고 혈압을 고르게 하고 장을 부드럽게 움직인다. 열량은 낮고 포만감은 길다. 여름철 식단에서 몸을 가볍게 하는 데 딱 맞다.
루테인 같은 항산화 성분은 눈을 지켜준다. 찌고 볶고 끓여도 제힘을 잃지 않는 순한 재료다. 된장과 두부, 고기와 해산물, 어떤 벗(?)을 만나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조용히 어울리고 상대의 장점을 끌어올린다. 겸손이 맛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호박이 보여준다.
중복이 지나 해가 독해질 무렵이면 집 뒤 텃밭이 먼저 숨을 쉬었다. 잎맥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넝쿨은 어느새 담장까지 기어올랐다.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셨다.
"저기, 애호박 연한 놈으로 하나 따와라."
나는 맨발로 흙을 밟았다. 손끝으로 표면의 솜털을 느끼고 꼭지를 비틀어 톡 꺾었다. 하얀 수액이 맺혔다. 풋내가 훅 올라왔다. 여름의 냄새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루를 뛰놀고 돌아와 이마에 맺힌 땀방울처럼 싱그러웠다.
부엌으로 돌아오면 일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물을 얕게 받아 애호박을 씻고 도마 위에 올리셨다. 껍질은 벗기지 말라 했다. 연해서 껍질이 곧 살맛이라 했다.
칼질 소리가 사각사각 이어지고 작은 가마솥에 물이 끓기 시작했다. 집된장을 한 국자 퍼서 풀었다. 우리 집에서 된장은 양념이 아닌 항아리에 빛과 바람과 시간이 나란히 앉아 만든 결과였다. 그 국물에 애호박을 먼저 넣었다.
두부 한 모, 다진 마늘, 송송 썬 파에 마지막에 들기름 한 방울이 향을 마무리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런 때는 음식을 먹으며 땀을 조금 내야 속이 편하단다."
그 말의 뜻을 나는 뒤늦게 배웠다. 뜨거운 것을 먹고 몸이 땀으로 길을 내면 더위가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밥 한 공기와 그 국물 한 숟갈이면 마음마저 풀렸다.
지금도 장 보러 나가면 애호박을 먼저 고른다. 손바닥에 올려 묵직함을 느끼고 표면의 탄력을 본다. 도마 위에 올리는 순간 부엌의 습기와 그 시절의 칼날 소리가 함께 살아난다. 어머니의 마디 굵은 손등이 떠오른다. 애호박 된장찌개는 여름의 냄새이자 가족의 온기다.
밥상은 화려해졌고 세상은 빨라졌다.
그런데도 그때의 맛은 내 속에서 여전히 은근히 끓는다. 국물 위로 떠 오르는 연두색 조각들이 삶을 다독이던 장면이 지금도 힘이 된다.



애호박 찌개 유튜브 '미블리 쿠킹' 캡처


손자병법으로 본 애호박 요리
애호박으로 펼치는 부엌의 '작전'은 생각보다 넓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시계'(始計)의 장을 애호박 조리에 적용해봤다.
손자는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 등 싸우기 전에 살피는 다섯 가지 원칙을 밝혔다. 밥상에도 그대로 통한다. 한 재료를 어떻게 판단하고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승패가 갈린다. 승패라 말하면 조금 과하지만, 식탁의 만족과 몸의 향방이 확실히 달라진다.
도는 마음을 얻는 힘이다. 밥상에서는 가족이 한 그릇을 중심으로 모이게 하는 맛이다. 애호박 된장찌개가 그렇다. 짜지 않고 맵지도 않다. 아이도 노인도 숟가락을 망설이지 않는다. 편안함이 입에서 마음으로 번진다. 소리가 낮은 음식이어서 오히려 대화를 불러온다. 도가 선 밥상은 밥그릇과 그릇 사이에 온기가 돈다. 어머니가 맨 먼저 국물을 맛보시며 고개를 끄덕이던 제스처가 도의 얼굴이었다.
천은 때를 읽는 안목이다. 애호박은 여름이 제철이다. 햇살이 강하되 바람이 드나드는 밭에서 자란 것이 맛이 깊다. 때를 놓치면 수분이 빠지고 단맛이 옅어진다. 제철의 것을 제때 써야 한다. 볶음이나 나물은 한 김 식혀 먹으면 위장이 편하다.
한낮에는 차게, 밤에는 따끈하게 먹어야 한다. 같은 재료라도 하늘의 때를 받아들일 줄 알면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천시는 참 간단한 데 막상 지나치기 쉬운 지혜다.
지는 환경에 맞는 배치다. 손님이 오는 날에는 부침개를 낸다. 간을 세게 하지 않아도 애호박의 단맛이 살아난다. 기름은 넉넉하지 않게, 겉은 얇게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한다. 아이가 있는 집에는 볶음을 권한다. 도시락에도 좋고 식혀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김치가 매울 때는 나물로 숨을 고른다. 들깻가루를 넣으면 고소함이 더해지고 어르신들도 잘 드신다. 식탁의 목적과 자리, 손님의 숫자와 시간 등 이런 환경을 읽고 전술을 바꾸는 일이 곧 지다.
장은 손끝의 리더십이다. 재료의 성질을 아는 것이다. 애호박은 수분이 많다. 곧바로 볶으면 물이 생겨 흐물거린다. 소금을 미리 뿌려 수분을 조금 빼거나 밀가루를 얇게 입히면 식감이 산다. 칼질은 두께를 일정히 한다. 너무 얇으면 금세 무너지고 너무 두꺼우면 맛이 배지 않는다. 불의 세기를 쥐는 감각도 장의 몫이다. 센 불로 한 번 숨을 죽이고 중불로 맛을 엮는다. 들기름은 마지막 순간에만 한 방울 넣어야 한다. 고소함은 향으로 남을 때 가장 길다. 장은 기술이 아니라 배려라는 사실을 부엌이 가르쳐준다.
법은 밥상의 질서다. 국물의 그릇이 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볶음과 나물과 부침이 네 귀퉁이를 편안히 메운다. 같은 재료로 만든 반찬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식감과 색을 달리한다. 한 상에 통일감이 생기고 동시에 다양함이 숨 쉰다. 그 질서는 억지로 세우는 규칙이 아니다. 먹는 이의 속도와 대화의 흐름을 살피는 마음에서 나온다. 법이 선 밥상은 서두르지 않는다. 젓가락이 자연히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애호박은 된장과 만나야 진가를 드러낸다. 하지만 혼자서도 충분하다. 소금 한 꼬집, 마늘 반 스푼, 들기름 끝맛 등 그것만으로도 밥 한 그릇이 비어간다. 고기와도 잘 붙고 해산물과도 싸우지 않는다. 두부와 있으면 서로의 빈 부분을 채운다. 겸손은 강함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밥상이 증명한다.
나는 이제야 어머니의 말을 이해한다. 더운 날엔 뜨겁게 먹고 땀을 조금 내라고. 몸은 땀으로 길을 내고 마음은 국물로 길을 낸다. 애호박의 연둣빛이 뚝배기에서 오르내릴 때 나도 알지 못한 사이 숨이 길어진다. 그 순간 밥상은 전장보다 넓다.
가족의 컨디션과 기분과 하루의 피로가 드나든다.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조율하는 지휘봉이 한 냄비의 찌개가 된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으뜸이라 했다. 애호박 한 개로도 한 상을 넉넉히 차릴 수 있다면 그 승리는 이미 달성된 셈이다. 입맛을 붙잡고 건강을 챙기고 마음을 모으는 일이다.
이보다 값진 승전이 또 있을까. 여름날 애호박은 반찬으로서가 아닌 식탁 위에서 펼쳐지는 전략이자 위로다.
오늘도 나는 애호박을 집어 든다. 칼날을 세우고 두께를 맞춘다. 한 국자 된장을 풀며 마음속으로 지휘를 시작한다. 도와 천과 지와 장과 법.
그 다섯 가지가 국물 속에서 천천히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이보다 정확한 승리의 신호는 없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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