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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나연 기자]









▲  우리 가족은 성당을 찾았다.


ⓒ jhc on Unsplash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우리 가 원가계산프로그램 족은 성당을 찾았다. 사립초등학교 입학 전형 중 '신자 가산점'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어린이 미사에서 나는 믿을 수 없는 발언을 들었다. 낙태 결사반대, 청원 독려, 그리고 '전 세계 낙태 1위'라는 왜곡된 주장까지.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성당을 나가는 걸 고민하게 됐다.
"예전에 어디서 성당을 다니셨나요?""대구 서울 농협 K 성당이요.""아, 가타리나 자매님. 지금 신원미상으로 되어 있으시네요."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 장례미사를 마지막으로 십 년 넘게 성당을 안 갔다. 어린 시절 잦은 이사로 성당은 나가지 못했지만, 성당은 늘 조용히 나를 기다려주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특히 성당 특유의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가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신 에너지생활의지혜 은 없을 거야' 보다는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날은 어린이 미사였다. 아이와 함께 자리에 앉아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던 중, 신부님은 설교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녹취에 따른 인용 내용이다.
"낙태를 하겠다고 하면 굉장히 쉬워져요. 내일 모레면 나올 아이를 '우리 아이 지우러 갈까?' '그래! 청약종합저축 ' 하며 병원에 가서 죽이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지? 갑자기, 어린이 미사 시간에?
눈이 동그래진 나는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분간 이 종교 공동체에서 뼈를 묻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피와 눈물을 흘리려고 했는데, 신부님, 이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란 말인가요. 물론 종교 지도자가 개인의 신념에 따라 낙태를 신용불량자회복기간 반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공개적인 종교 행사, 특히 어린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단언하다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신부님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낙태율 1위예요. 아이도 안 태어나는데 나라가 완전 망하는 길로 가는 거죠."
지난 어린이 미사 때, 내 딸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의 얼굴 표정이 스쳤다. "우리 성당에는 아이가 특히 귀해요."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알겠다만, 그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낙태율 1위'를 강조하는 것이 영 신경 쓰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8년 발표한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인공임신중절률(낙태율) 통계에 따르면, 한국보다 낙태율(15.8%, 10)이 높은 나라는 스웨덴(18.0%, 15), 에스토니아(17.0%, 15) 정도다(*낙태율 옆이 통계 측정 연도. 각 나라마다 통계 측정 연도가 다르고, 다소 과거 자료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수치만 보면 대한민국은 낙태율이 높은 나라가 맞지만, 이 결과가 말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여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자료를 찾기 어"려울 뿐더러, "오히려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낙태를 처벌하는 국가에 비하여 낙태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는 실증적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인용 기사 : <로톡뉴스>, '낙태죄가 낙태 막는 거 아냐' 헌재 결정에 결정적 영향).
낙태죄는 1953년 제정 당시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목적으로 입법됐지만, 지금은 '태어난 아이 하나 잘 돌보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낙태 반대'를 외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무책임한 발언이 어린이 미사 시간,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계속됐다는 점이다. 설교라는 형식을 빌려 신앙의 권위로 정치적 행동을 유도하고,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그 행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심지어는 임신 중지시 약물 사용을 허용하고, 사유의 제한 없이 인공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을 반대하는 청원 참여를 강하게 독려하기도 했다.
"지금 이 법(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려 합니다. 여러분이 청원에 참여해주셔야 합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결사반대'를 꼭 눌러야 이 악법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정말 그게 맞나요









▲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니 나는 그가 무서워졌다.


ⓒ izzyfisch_ on Unsplash



어른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알아서 걸러 듣고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어린 아이들이다. 실제로 '전교조는 나쁜 단체다'는 이야기를 초등학교 시절에 들은 나는, 전교조가 뭔지도 모른 채로 전교조를 오랫동안 혐오했던 적이 있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절대적인 대상이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신념을 심어 놓은 것이다.
자리에 앉는 사람은 자리의 무거움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니 나는 그가 무서워졌다. 그가 주장하는 낙태 찬성 악법보다, 바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가 독보적으로 무서웠다. 딸은 아직 어려서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지만, 계속 이런 설교를 듣고 자라면 당장 내년 정도만 되어도 '낙태는 나쁜 거야'하고 말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성당에 다시 나가기로 한 건 초등학교 진학 문제 때문이었지만, 나는 내 안에 신을 다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내가 믿는 신은 이미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내 믿음과 소원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유연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생각해야 믿을 수 있었다. 나는 워낙 감정이 변화무쌍하고 삶의 파고도 큰 편이었기에, '이런 나도 받아주실까' 하며 지레 겁을 먹었다. 그러나 용기를 준 친구 목사님이 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셔. 부모님이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듯 하나님은 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분이셔." 나는 성당에 나오지 않는 동안에도 그렇게 조금씩, 하느님에 대해서 마음을 더 열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
나는 아이를 낳은 엄마지만, 이전에 건강 상의 이유로 임신 중단을 고민한 적이 있다. "내가 정말 낳을 준비가 된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계획 하에 생긴 아이였는데도 그랬다. 임신한 즉시 너무 아팠고, 모든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출산 후에는 아이에만 매달렸고,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도 삼 년을 넘게 갔다. 산후우울증을 진단 받아 우울증 약도 장기간 복용한 적이 있다. 내 건강하던 시절을 잘 아는 남편은, 내 기본 체력이 출산 후에 확 떨어진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했다.
만약 둘째가 계획 없이 생겼다면, 나는 임신 중단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피임을 잘 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자는 좋은 말들 뒤로는, 항상 예외적인 상황도 존재하는 법이다. 나는 내 임신과 출산 경험을 통해 임신 중단은 단순히 '찬성'이나 '반대'로 나눌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절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임신 당사자의 판단과 상황일 것이다.
종교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처가 되어야 할 것인데, 그날 나는 좌불안석으로 앉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하느님이 나를 내친 것도 아닌데,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못해 쫓겨난 사람 같았다.
어린이 미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핫도그와 수박을 맛있게 먹었다. 웃고 떠드는 모습이 그야말로 참 예뻐서 자꾸 쳐다보게 됐다.



천주교의 공식 입장: 임신중단에 대한 교리 요약


가톨릭교회는 모든 인간 생명이 수태되는 순간부터 존엄하다고 보며, 낙태를 중대한 도덕적 죄로 간주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2270조에 따르면,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지켜져야 하며, 태아는 낙태에 의해 고의로 살해되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공식 문헌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한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특정 예외상황에 대한 논의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우리가 믿는 건 신이 아니라 사람일지도
신부님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겐 칼날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신의 뜻'이라 믿기에 전했을지도 모른다.
딸의 학교 진학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속한 공동체가 어떤 언어와 시선을 갖고 있는가'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신앙에게 기대고 싶었던 이유는 따뜻함이었다. 신앙이기에, 쉽게 따뜻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믿음이 높은 만큼 실망이 깊기도 하다. 믿음은 사람을 죄인으로 몰기보다, 그 삶의 복잡함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천주교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낙태는)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한해" 판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위독함' 을 누가,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위급할 수 있다. 너무 아파서, 두려워서, 견딜 수 없어서ㅡ그 모든 고통도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 라고 말했을 때, 누군가가 "아니야, 넌 괜찮아, 넌 건강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신부님의 말이 우리 성당의 전체 의견은 아니겠지만, 일방적으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 앞에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게 속상했다. 성당은 내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 신자의 입장에서 어느 선까지 말할 수 있는지, 신부님의 설교는 어디까지 절대적인 것인지 궁금하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당신이 겪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태도입니다. 이는 그를 사회적 범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와 동일하게 고통받는 존재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 시몬느 베유


우선은 사립 초등학교보다, 아이에게 어떤 공동체를 보여주고 싶은지를 기준으로 바라보려 한다. '어느 초등학교에 보낼까'라는 문제는, '어떤 가치를 따라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보다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다시 성당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말해 두자면, 신에 대한 고민인 건 아니다. 신은 내 안에 있으니까.



낙태죄 헌법재판소 결정 요약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1953년부터 유지되던 '낙태 전면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는 판단이며, 2021년 1월 1일부터 해당 조항은 효력을 상실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존재하지 않으며, 정부는 별도의 입법 보완을 준비 중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제도적 공백과 의료기관의 소극적 태도 등으로 여전히 임신중단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