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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있는다면 전화벨이[짬] 50년 전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김용원 열사 딸 김정진씨



김정진 다큐멘터리 감독. 강성만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정진(53)씨는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그날 밤 남편과 함께 국회로 향했다. 계엄 선포 30분 뒤인 밤 11시께 국회 앞에 도착해 국회 마당에 내려앉던 군 헬기와 계엄을 막으려는 시민들 옆을 떠나지 않던 수방사 차량을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윤석열이 계엄을 해제하던 새벽 4시30분까지 6시간은 그에게 분노와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김씨는 그 뒤로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시위에 거의 빠짐없이 출석한다. “지금 어마어마한 안산빌라대출 위기 상황인데 사회적으로 다뤄지는 방식이 왜곡되고 있어요. 마치 정쟁의 과정이나 법전 해석의 문제처럼요. 그러다 보니 윤석열 탄핵을 외치면 좀 유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고요. 윤석열은 이권과 자기 생존을 위해 국가가 손상되고 사회가 파괴되든 상관 없이 뭐든 동원할 사람입니다.” 그는 집회 현장에서 시민 인터뷰도 한다. 올해 말쯤 공개를 목 서민주택기금 표로 작업 중인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50년’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에게 어떻게 사제단 다큐 제작과 연출에 나서게 되었는지 물었다. “어려서부터 (사제단 소속) 문정현, 함세웅 신부님 그리고 미국인 선교사였던 시노트 신부님 이야기를 익히 들었어요. 그런 게 제 정체성의 일부가 국민행복기금 신용회복 되었어요.”



김용원 열사. 김정진 감독 제공


그와 사제단과의 ‘만남’은 50년 전인 1975년으로 올라간다. 그의 부친 바우 김용원(1934~1975.4.9) 선생은 부산고 입학 뒤 검정고시를 거쳐 2년 만에 무직자대출가능한곳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간 ‘천재’였다. 어릴 때부터 친구인 헌쇠 박중기 선생은 “김용원은 ‘천재’를 넘어 ‘대재’”라고도 했다. 하지만 김용원은 41살이던 1975년 4월9일 박정희 독재의 대표적 ‘사법살인’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처형됐다. 1974년 4월18일, 5년째 교사로 재직하던 경기여고에서 수업 중 체포돼 가혹한 고문에 시달리다 이듬해 4 담보대출금리비교 월8일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불과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재심 기회조차 박탈하고 8인의 생명을 앗아간 그날 형 집행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명명하며 규탄했다. 32년이 지난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재심에서 8명 희생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제단은 사랑하는 이가 간첩으로 조작된 가족의 외로운 싸움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도왔다. 박정희 정권의 무리한 수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고, 인혁당 가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었다. 당시 김씨는 3살이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언제쯤 알았을까? “누가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알았어요. 집에 아버지가 옥에 반입했던 책 수십권이 있었거든요. 책을 펴면 수인번호 34가 적혀 있었어요. 성경책에도 쓰여 있었죠.”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만 30살에 한예종 대학원(영화연출 전공)에 진학했다. 2015년 ‘사법살인’ 40년을 맞아 ‘형 집행’ 이후 사흘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유족 인터뷰를 통해 살핀 단편 다큐멘터리 ‘3일’도 만들었다. 지난해는 4·9통일평화재단 쪽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된 장편 다큐멘터리를 ‘사제단 50년’에 이어 제작할 뜻을 밝혔다.



김용원 열사 결혼사진. 김정진 감독 제공


‘사법살인’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언제부터일까? “인혁당 사건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난 적은 없어요. 다만 청년기에는 벗어나고 싶었던 쪽에 가까웠죠. 청년 때는 사회가 민주화되고 있었으니 그래도 될 것 같았어요. 영화를 공부하며 개인적 성장에 주력할 때 어머니들이 재심청구 운동을 하셨지만 저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많아요.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적 관심을 놔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머니(유승옥)도 그때 (이명박 정부의 민주화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하냐, 큰일 났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과거 너무나 무서운 국가폭력을 당해보셨으니까요.” 그의 어머니는 남편 체포 뒤 구명 운동을 하다 중정에 끌려가 여성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고초(수사관들이 최음제 의심 음료를 먹임)를 겪었고 남편이 떠난 뒤에도 정보원 감시 탓에 당시로써는 고학력인 고졸에도 정상적인 취업이 힘들어 학습지 배달로 네 가족의 생계를 꾸렸단다. 1남2녀 중 막내인 그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떠올렸다. “아버지가 떠난 뒤 우리 형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금지가 많았어요. 엄마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쓸데없는 말이나 농담을 하거나 웃음을 보이거나 그런 게 일절 없었어요. 생계 때문에 너무 바쁘셨고 여유가 있을 때는 굉장히 슬픈 느낌이었어요. 제가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초등생 언니 교과서를 엄마 앞에서 읽었는데 박정희 장군이 지프를 타고 가다 딱 멈춰 길에 노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에피소드가 나와요. 그때 당황해 어떻게 할 줄 몰랐어요. 그런 일이 너무 많았어요. 언행 하나하나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어요.”경기여고 교사로 재직하던 아버지 수업 중 체포돼 75년 4월9일 처형 만 30살에 영화연출 공부 시작한 딸 10년 전 사법살인 다룬 단편 만들고 지금은 ‘사제단 50년’ 다큐 제작 중 “다음 작품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장편” “신직수 정보부장·민복기 대법원장 등 사법살인 수족 죄상 명백히 밝혀야” 김용원 선생은 고2 때인 1955년 부산 지역 고교생 사회과학 동아리 ‘암장’ 회원들과 어울리며 진보적인 사회의식을 벼렸고 대학 진학 이후에도 암장 동지인 이수병 열사, 박중기 선생 등과 함께 자취 생활을 하며 ‘평등 세상과 민족 통일’을 위한 활동을 이어 갔다. 대학 시절엔 서울대 민주통일연맹 대의원을 지냈다. “아버지가 대학 들어갈 때는 자연과학도로서 세상에 크게 기여하겠다는 꿈을 꾸셨대요. 하지만 군 제대 뒤 4·19를 겪고 또 박정희 독재가 심각해지자 사회과학 학습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어요. 엄마한테 전태일 이야기도 많이 하셨답니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요. 아버지도 저임금 시간강사 일을 오래 하셨어요. 젊을 때는 너무너무 가난하게 사셨답니다.”



김용원 열사 생전 가족사진. 김정진 감독 제공


고교 시절 품은 사회 변혁에의 꿈을 3남매의 가장이 되어서도 버리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딸은 어떤 생각일까? “그 시대 혁신계 인사나 지식인들은 책에서 본 이념으로 세상을 본 게 아니라, 세상에서 직접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념을 찾은 것 같아요. 그분들은 애초 하나였던 나라가 인위적으로 동강 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직접 목도했고 또 이승만과 박정희 체제의 사회 경제적 모순에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는지 실제 목격하셨어요. 그분들 역시 고통받던 인민의 일원이었죠. 처음엔 영국 사회주의 사상에서 길을 찾았다고 해요. 반면 80년대 이후 운동가들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념 그리고 통일을 먼저 공부하고 세상을 봤다고 생각해요. 박정희 정부를 지나면서 앞선 혁신계 세력과 이후 운동 세력이 단절된 게 많아 아쉽습니다.” 앞으로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계속 기억되어야 한다면 그 이유가 뭔지 물었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규명위 조사나 재심 무죄 등으로 역사를 바로잡은 것 같지만 사실 사법살인을 벌인 수족들은 단 한명도 단죄되지 않았어요. 당시 중앙정보부장 신직수(1927~2001)나 사형 선고를 한 민복기(1913~2007·친일인명사전 수록) 대법원장을 포함해서요. 저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불안정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봐요. 단죄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해도 국가는 이들의 잘못을 명백히 밝혀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큰 영향을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인 일들, 공공의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담으로 느끼면서도 그걸 당위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공공의 일에 목소리 내는 데 머릿수라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죠.”



경기여고 제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김용원 열사. 김정진 감독 제공


화제를 돌려 윤석열 탄핵 찬반 시위를 보며 어떤 생각인지 물었다. 그는 “올해 94살인 이모님이 해방 무렵 서울 성북동에 사셨는데, 지금 상황이 반탁과 찬탁 시위로 나라가 극심한 혼란을 겪던 해방 이후와 비슷하다고 걱정하신다”며 말을 이었다. “저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데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성이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사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윤석열의 도덕성이나 문제점이 다 드러났잖아요. 그런데도 나한테 유리할 것 같아 상당수가 표를 던졌어요. 차기 대선 이후 사회 대개혁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사회 대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사회 문제의) 원인을 찾고 바로잡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겁니다. 경쟁주의와 엘리트주의가 도를 넘은 것도 (사회 문제의) 굉장히 큰 원인입니다만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남북 분단을 꼽을 수 있겠죠. 사실 남북 분단을 안고서는 원인 치료가 쉽지 않아요. 분단 모순에서 결국 빨갱이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게 덮어지는 세상이잖아요. 원인 치료를 위해선 완전히 분단을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평화 체제라도 한걸음 진전시켜야 합니다. 제발, 빨갱이 이야기 좀 그만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합니다. 평화 체제가 중요하고 그다음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잖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아버지 등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 외에 더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물었다. “50년 전 사법살인은 당시의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이고, 거기서 배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교훈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저든 누구든 이런 일에 기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