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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달리기는 묘하게 어울립니다. 달리는 모든 순간이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고요. 여행을 가서 달리기를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어떤 경험, 어떤 기억이 될까요? 달리기가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누군가는 달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요. 또 누군가는 낯선 곳에서 더듬더듬 나아가며 기어코 슬픔을 이겨냅니다. 마치 거대한 책과도 같은 풍경을 탐험하며 지적 풍요를 누리는 이도 있을 거고요. 꾸준히 달리는 친구들에게 여행과 달리기에 대해 물어보았어요. 그저 질문을 했을 뿐인데, 그들은 기쁨을 느끼는 온갖 표정을 우리은행자영업자 보여주었습니다.



리스본에서 현지 러너들과 달린 뒤 단체 사진을 찍은 영신씨. 조영신 제공


조영신(42)님에게 달리기는 아침에 일어나 방의 창문을 여는 것처럼 일상적입니다. “삶 속에 항상 달리기가 있어서 여행을 가 뉴환승론 서도 자연스럽게 달리게 됩니다. 지난 1월 중순에 서울의 추위를 피해 제주 서귀포시 표선에 갔습니다. 기상이 좋지 않았는데 하루는 날씨가 맑아서 해안을 따라 17㎞ 정도 달렸습니다. 반짝이는 바다가 아름다웠어요. 5월 초에는 연휴를 맞아 경남 하동에 갔습니다. 하동호가 보이는 숙소에 묵으며 아침마다 달렸습니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새소리만 들렸고 명상하는 세곡동 보금자리주택 기분으로 달리다 보니 호수처럼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6월엔 학회에 참석하는 가족을 따라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여행을 갔고 역시 아침마다 달렸습니다. 우리나라 한강처럼 리스본에도 큰 강이 있어요. 이름이 테주강이고, 대서양과 만납니다. 강을 따라서 달리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 달리고 싶어집니다. 저 멀리 대서양까지 금방 닿을 것만 같았어요.” 낯선 학자금대출 후 국가장학금 곳을 달리는 게 영신님에게 어떤 기분인지 물었습니다. “넓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가 매우 작다는 걸 깨달아요. 며칠 혹은 몇개월 동안이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고민거리가 덧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달리기는 생각을 비우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줍니다.”



조영신 한국은행기준금리인상 씨가 달리기 장소로 선택한 하동. 조영신 제공


김기쁨(33)님은 도망치듯 떠난 곳에서 달리기를 하며 마음이 회복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작년 여름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내면서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서울에서 버티기가 힘들어서 제주로 갔어요. 하루는 잠들기가 너무 어려워서 새벽에 바다로 나갔어요. 갑자기 제가 해가 뜨는 방향을 향해 달리더라고요. 다음날 새벽에 또 바다로 나갔어요. 그리고 달렸죠. 그렇게 제주에서 한달을 달리고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날들이 서서히 저를 일으켰어요.” 기쁨님은 바닷가를 달리며 자신의 상태에 대해 독서하듯 읽어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더 밀어붙이는 대신, 안전하고 적당한 테두리를 더듬어 찾았어요. 그 안에 저를 넣었던 거죠. 제주에 와서 달리기를 하는 것이 저에게는 테두리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어요. 두려워서 멈추려고 할 때마다 나를 달래서 더 가보았고, 그때 제 세계가 확장되는 희열을 경험했어요. 테두리 밖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기쁨님은 여행지에서 달리기를 하며 삶이라는 여정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했습니다.



기쁨씨가 달리기에 몰입한 제주의 풍경. 김기쁨 제공





기쁨씨가 새벽마다 달린 제주도 해안. 김기쁨 제공





‘보이스, 비 앰비셔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는 일본 홋카이도대학교 초대 교감이다. 성중씨는 이곳을 달리다 이 동상을 발견했다. 윤성중 제공





일본 홋카이도대학교 교정을 달린 성중씨의 작업물. 윤성중 제공


윤성중(43)님은 ‘달리기’라는 도구로 여행지를 탐험합니다. “여행 가서 달리는 이유는 모험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죠. 이건 마치 게임 같아요. 어두컴컴했던 미지의 영역이 달리기를 통해 밝혀집니다. 내 영토가 확장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는 최근에 일본 삿포로에 갔습니다. “새벽에 홋카이도대학교 교내를 달렸어요. 구글 지도로 러닝 트랙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찾아갔어요. 궁금한 풍경 앞에 멈춰 서서 지도를 보거나 관련 안내판을 읽었어요. 달리면서 역사책을 읽은 느낌이었어요. 무척 흥분됐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탐구하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신기한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새벽이어서 그런지 트랙에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재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나체로 소리를 지르면서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왔어요. 무리 중 나를 발견한 세명은 도망쳤어요. 나머지는 발가벗고 트랙을 달렸어요.” 도대체 이 황당한 일이 왜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겐 친구들에게 들려줄 일화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카콜 작가가 캄보디아 여행 중 프놈펜 왕궁을 달린 뒤 그린 그림. 카콜 제공





카콜 작가가 캄보디아 여행 중 프놈펜 왕궁을 달린 뒤 그린 그림. 카콜 제공


카콜(본명 임세환·35)님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그는 달리며 재미있는 풍경을 수집합니다. “여행지에서 러닝을 하며 흥미로운 것들이 보이면 바로 기록을 하는 편이에요. 특히 숙소 주변의 재미난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지도에 저장을 해요.” 달리며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캄보디아에서 러닝할 때 신기했습니다. 불교 국가여서인지 불교 방송이 길가에 울려 퍼지더라고요. 달리는 중간중간 스님들을 자주 마주쳤는데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일본 마쓰야마 지역도 좋았습니다. 마쓰야마성을 달렸는데 현지 분들도 많이 러닝을 하는 곳이라, 그들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어요.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달리기를 하며 아침을 맞는 모습이 평온해 보였어요. 지역에 사는 분의 추천으로 일본의 여러 러닝 브랜드도 알게 되었어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브랜드였어요.” 카콜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그림으로 그려 사람들에게 공유합니다. 그러니 달리기는 그의 그림 도구인 셈입니다.



베를린 마라톤 대회를 즐기고 있는 성훈씨. 그는 지역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여행도 한다. 김성훈 제공





베를린 마라톤 대회를 즐기고 있는 성훈씨. 그는 지역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여행도 한다. 김성훈 제공


김성훈(40)님은 해외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작년 독일 베를린마라톤에 출전했어요. 대회 전날, 한 스포츠 브랜드에서 주최한 그룹 런에 참여했습니다. 외국 러너들과 함께 베를린 시내와 마라톤의 코스 일부를 미리 달렸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낯선 거리를 달리며 대화를 나누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다음날 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본격적인 베를린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피곤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휴식이니까. “제가 생각하는 ‘휴식’은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걸 넘어, 환경을 바꾸고 주변을 환기하는 경험에 더 가깝습니다.” 그는 달리기 여행을 통해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중입니다. 김도환(32)님은 지난해 7월 한국의 더위를 피해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갔습니다. “그때 시드니는 기온이 15~20도 안팎이었어요. 시원했죠. 2주 동안 100㎞ 넘게 달렸어요. 시드니 로열 보태닉 가든을 뛰며 본 초록과 파랑의 풍경이 인상적이었어요. 생기를 머금은 잔디와 나무, 포스터물감으로 칠한 듯한 하늘!” 놀랍게도 이 여행은 도환님의 가치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 눈치를 덜 봐도 되겠더라고요. 제가 본 서울 러너들은 무채색 운동복을 많이 입고, 몇몇 유명 브랜드 제품을 선호해요. 그런데 제가 본 시드니 러너들은 오렌지색, 보라색, 하늘색 등 파스텔톤 색깔들도 많이 입고, 브랜드도 다양했어요. 그래서 다들 다르게 보였어요. 시드니 러너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며, 남들을 의식하며 행동하던 제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시드니를 달리는 도환씨. 김도환 제공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를 배경으로 찍은 도환씨의 인증샷. 김도환 제공


도환님의 이야기는 여행의 본질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행은 낯선 곳에 우리를 내려놓는 행위입니다.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달리기도 비슷합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믿음,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이 몸을 앞으로 밀어냅니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본능적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시야의 저 바깥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그건 모두에게 다르고, 오직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행을 간다면 아무 신발이나 신고 걷듯이 달려보면 어떨까요? 비록 평소에는 전혀 달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우성 콘텐츠 제작사 미남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