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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체험 후기

한 해 10만 명이 찾는 명소, '이걸' 하기 딱 좋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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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서선수 작성일21-05-10 08:05 조회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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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춤추는 섬, 무의도를 걷다... 자연이 훼손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이상구 기자]섬이되 섬이 아닌 섬노을에 비친 섬의 실루엣은 길게 흩날리는 무희의 옷소매를 닮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져 감기우는(조지훈 '승무' 중)' 형상이다. 섬의 왼편 끝자락은 길게 늘어지며 바다에 잠긴다. 무의(舞衣)라는 이름이 그 이상 잘 어울릴 수는 없다.지명엔 여전히 섬 도(島) 자가 붙어 있지만 그곳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커다란 다리로 뭍과 한 몸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그 덕에 몸은 편하게 됐는데 마음은 조금 불편하다. 혹시라도 자연에 해가 될까 봐서다. ▲ 무의도 해상 탐방로  밀물 땐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을 주는 해상탐방로. 갯벌을 보존하려는 노력의 하나다. 지금은 전면통제 중이다. 물론 코로나 때문이다.ⓒ 이상구그래도 무의도는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아름답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공기는 더없이 상쾌하며 계곡의 물은 맑고 싱그럽다. 갯벌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 숨 쉬고, 곳곳에 자연이 빚은 아찔한 비경이 즐비하다. 그걸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가상하다. 주말이나 공휴일엔 자동차의 입도를 제한하고 사람들이 마구 갯벌을 밟지 않도록 해안선을 따라 해상탐방로를 놓기도 했다. 지금이야 코로나19로 발걸음마저 뜸하지만 말이다. 섬은 호령곡산과 국사봉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그게 무의도의 척추인 셈이다. 섬의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수직절벽과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의젓하게 앉아 먼 바다를 응시하는 사자바위나 대중을 굽어 살피는 부처바위에서는 영험한 기상마저 느껴진다. 오랜 시간동안 바닷물에 깎인 해식동굴도 있고 세상사를 함축해 놓은 만물상도 보인다. 서쪽바다는 얕고 잔잔하다. 실미해수욕장에서 실미도까지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린다. ▲ 사자바위 의연하게 앉아 서해바다를 지키는 사자바위ⓒ 이상구 해변을 따라 바다 위를 걸어다니는 인공탐방로를 만들어 놓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아쉬운 대로 호룡곡산 아래의 '환상의 길'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길은 소무의도가 가까이 보이는 남쪽 끝까지 이어진다. 소무의도까지는 또 하나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만 다니는 인도교다. 거기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건 참으로 현명한 처사였다.소무의도는 이름처럼 크기는 작지만 역사는 깊다. 그 작은 섬은 또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다. 주민들은 그곳에서 볼 만한 것들을 추려 이른바 '누리 8경'을 만들었다. 마을의 당제를 지내던 부처깨미, 전 대통령 가족이 휴가를 즐겼다는 명사 해변 등을 포함한다. 그 여덟 풍경은 모두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다 둘러보는 데 걸어서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한 해 10만 명이 찾는 명소다.이 섬의 대표적인 해수욕장 이름인 '하나개'는 큰 갯벌이란 뜻도 있고 유일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어느 것이든 갯벌은 정말 넒다. 끝 간 데를 모른다. 가늠조차 어렵다. 그 갯벌은 온통 진흙이 아니다. 모래 성분이 더 많다. 무의도 바다가 서해의 다른 곳과 달리 유난히 바닷물이 맑은 건 그 때문이다. 그 바닥은 단단하고 완만하다. 동죽이나 고둥, 각종 게 등이 지천으로 산다. 가히 생명의 보고다. ▲ 호룡곡산에서 바라본 노을 하늘과 바다에 두 개의 붉은 태양이 떴다. 그 풍경이 장쾌하다.ⓒ 이상구 서해의 섬이 으레 그렇지만 무의도는 특히 노을이 아름답다. 그건 보는 장소에 따라 느낌이 각각 다르다. 호룡곡산이나 국사봉의 정상에서 보는 노을은 장쾌하다. 그 풍경이 시시각각 각양각색으로 변하면서 한편의 서사시가 된다. 하늘의 태양이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바다에 또 하나의 태양이 뜬다. 눈부시도록 강렬한 붉은빛이다. 차라리 불덩이다. 두 태양은 다시 하나로 합쳐지며 서서히 바다에 잠긴다.실미도의 노을에는 가슴 저미는 이별의 순간이 어려 있다. 태양은 바다에 잠기면서도 제 흔적을 쉬 거두지 않는다. 서쪽 하늘을 물들인 붉은 기운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문다. 그 여운이 무척 길다. 황금빛 석양은 또 몽환적이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눈은 부시지만 그 미세한 움직임에 지루한 줄 모른다. 해변 한편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석멍(석양 보며 멍 때리기)'도 좋다. 개발과 보존의 현명한 균형 ▲ 무의대교 무의도는 이웃 섬 잠진도와 연도교인 무의대교로 하나가 됐다. 다리는 인간에겐 이롭지만 자연에겐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이상구 지난해 5월 정식 개통된 무의대교는 무의도와 잠진도를 연결한다. 그 잠진도는 오래 전에 용유도와 방조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용유도와 이웃 섬 영종도 사이의 바다는 매립해 세계적 규모의 국제공항을 건설했다. 영종도는 두 개의 거대한 다리로 육지 인천에 가 닿는다. 결국 소무의도를 포함해 모두 5개의 섬들은 이제 다리와 방조제로 촘촘히 연결된 단일한 운명체, 모두 섬이되 섬 아닌 섬이 된 것이다.그게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함부로 이게 맞다, 아니다 단정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인간의 편익을 위해서는 의당 그래야 하지만 자연과 환경의 보존을 위해서는 피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상황은 일단락 됐다. 다리가 놓였고, 모두 하나가 됐다. 남은 과제는 균형을 찾는 것이다. 개발과 보호,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가치 사이의 균형이다. 한번 상처 난 자연이 다시 회복하려면 참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 국사봉의 공사현장 국사봉의 허리깨를 파헤친 공사현장. 새로 길을 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이상구 솔직히 다리를 건너자마자 맞닥뜨린 섬의 첫 인상은 불안했다. 섬은 온통 공사판이었다. 길을 넓히거나 새로 내고 상수도를 들이고, 주차장을 만들고, 이런 저런 편의시설들이 끊임없이 짓고 있었다. 섬의 곳곳이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신음하는 듯했다. 특히 국사봉의 허리께를 길게 파헤쳐 놓은 공사현장은 그냥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다지만 그것을 위해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줘야할 자연을 깎아 내는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섬을 떠나 육지로 접어들면서 문득 사람과 섬을 생각했다. 누군가는 인간의 고독을 섬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영화 <어바웃 보이>(About Boy)의 주인공 윌(Hugh Grant 분)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사람은 섬이 아니다. 섬이라 할지라도 줄지어 늘어서 있는 열도(列島)다. 모든 섬은 바다 밑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외쳤다. 그 말처럼 무의도와 그와 하나가 된 섬들은 물 아래로 유사 이래 계속 이어져 있었다. 굳이 물 위로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오마이뉴스 '시리즈'에서 연재하세요!▶이재명 경기도지사 추천 《이재명과 기본소득》▶오마이뉴스 취재 후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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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40주년 특별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8월29일까지반입 금지됐던 ‘한국에서의 학살’ 등 모더니즘 서양미술 볼 수 있어[경향신문] “서울지검 공안부는 9일 상오 불란서 화가 ‘피카소’를 찬양하거나 그의 이름을 광고 등에 이용하는 행위는 반공법 4조1항(국외 공산계열의 동조 찬양, 고무)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1차로 크레온 제조업자인 박○○씨(45)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또한 ‘피카소·크레파스’ 등의 광고를 금지시키고 판매 중인 상품의 ‘피카소’ 이름을 지우도록 지시했다.”(경향신문 1969년 6월9일 보도) 이 기사에서 검찰은 ‘좌익화가’ 피카소의 그림을 문제 삼는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삼은 ‘한국에서의 학살’이 그 문제작이었다.■ 한국에 온 ‘한국에서의 학살’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 합판에 유화ⓒ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파블로 피카소(1881~1973) 탄생 140주년 특별전은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품 110여점으로 구성된 ‘블록버스터’ 전시다. 입체주의 탄생부터 말년의 작품까지 피카소 예술의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했다. 피카소의 이름값도 이름값이지만, 화제가 된 이유는 따로 있다. 70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서 전시되는 ‘한국에서의 학살’ 때문이다.2m에 달하는 화폭 오른편에 중세 기사처럼 철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6명의 군인이 총칼을 겨누고 있다. 폭력이 향하는 왼편에는 벌거벗은 여성과 아이 8명이 있다. 겁에 질린 아이를 숨기는 임신부부터 코앞에 닥친 죽음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아이까지. 공포에 질린 사람들과 군인들의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 작품은 피카소가 1951년 1월18일 완성해 그해 5월 프랑스 파리 ‘살롱 드 메’전에서 처음 공개했다.이전에도 국내 전시가 추진됐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의 반미 선전용 그림이었던 데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개입한 황해도 신천 양민학살이 창작 배경이라는 설 때문이었다. 1980년대까지도 반입 금지 예술품 목록에 올랐다.남루한 과거를 지나 오늘날 ‘한국에서의 학살’에서 읽는 것은 ‘반전’ 메시지다. 작품 구도는 피카소가 존경하던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3일’(1814)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나폴레옹군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양민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고발한 작품이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에두아르 마네는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8~1869)을 그렸고, 피카소도 전쟁의 살상 행위에 대한 고발을 비슷한 구도로 담아냈다. 사실 선전화치고는 구체성이 떨어지는 데다, 완성도가 탁월한 수준도 아니어서 해외에선 크게 주목받은 작품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게르니카’(1937),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시체구덩이’(1944~1946)에 이은 피카소의 3대 반전 작품으로 꼽힌다.■ 피카소로 보는 서양미술사파블로 피카소, 만돌린을 든 남자, 1911, 캔버스에 유화ⓒ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전시는 피카소로 보는 모더니즘 서양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피카소는 평면에 다양한 시점을 조합한 ‘입체주의(큐비즘)’로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의 전통을 흔들었다. 이번 전시에는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은 없지만, 그의 분석적 입체주의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대형 입체파 작품 중 하나인 ‘만돌린을 든 남자’(1911)가 주목할 작품이다. 회화와 조각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기타와 배스 병’(1913)은 이번 전시 작품 중 보험가액이 800억원으로 가장 비싸다. 큐비즘을 실험하던 피카소가 자신이 좋아하는 오브제 중 하나인 기타를 모티브로 해 마분지, 파피에 콜레, 천, 끈 등 여러 재료를 조합해 만든 부조이다. ‘현대 조각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언뜻 한 사람의 작업으로 보이지 않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실마다 펼쳐진다. 입체주의에서 구상 회화로 돌아간 피카소가 절친이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화폭에 담은 ‘편지 읽기’(1921)는 피카소의 신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피에로 복장의 폴’(1925)은 아들 폴을 사랑스럽게 그렸다. 그는 배경을 어두운 색면으로 처리하고 옷을 흰색으로 칠해 원근감을 표현했다.파블로 피카소, 마리 테레즈의 초상, 1937, 캔버스에 유화ⓒ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피카소의 여인’들에 대한 그림이다. 처음 페르낭드 올리비에부터 마지막 자클린 로크까지 피카소는 새로운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작품 경향이 바뀌었다. 이번 전시에는 마리 테레즈와 도라 마르를 모델로 한 눈에 익은 작품들이 왔다. 관계의 상태에 따라 밝았던 얼굴이 우울한 분위기로, 다시 노년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변화들이 눈에 띈다. 피카소가 애인들을 어떤 마음의 눈으로 바라봤는지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회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조각, 도자기 등 피카소의 폭넓은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서순주 전시커미셔너는 “코로나19로 해외 전시들이 중단돼 한국에서 대규모 전시가 가능했다”며 “피카소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29일까지.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인터랙티브] 김진숙을 만나다▶ 경향신문 바로가기▶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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