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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없다고. 무슨 우리 맑은 전에는 배경남한산성 산성길에서 필자.


이른 더위에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 아무 의욕도 나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호기심도 없어지고 뭐든 시들해질 뿐이다. 여행은 교통대란에 지치고, 맛집의 바가지요금에 주머니는 거덜 난다. 모든 게 식상한 상태인데 '이거다!' 싶을 정도로 좋은 게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여러 날 생각 끝에 산행을 떠나기로 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남한산성으로 등산 겸 역사기행을 떠난다.
남한산성에서의 항복과 삼전도의 굴욕
광해군의 슬기롭고 절묘한 실리 외교와는 달리 당시 조정은 현명하지 못한 외교로 청나라 이십만 대군의 침입을 자초했다. 12일 만에 한양까지 진격하는 청군의 파죽지세에 강화도급등주추천
로 피란 가는 길마저 끊기게 된 인조와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성을 에워싼 청군에 1만3,000명의 향병鄕兵과 근완병勤王兵이 항전했으나 피해만 급증했고, 혹독한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동상으로 활시위조차 당기지 못했다. 굶주림 또한 적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산성에 꼼짝없이 갇힌 탓에 군량을 조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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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된 남한산성에서 결단을 미루던 인조는 두 달 분의 비축 물자가 바닥나자 항복을 결심한다. 서문은 말을 타고 나갈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성문이다. 임금의 체통상 정문인 남문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항장降將은 정문을 지나갈 수 없다며 받아 주지 않았다. 인조는 용포를 벗고 평민의 차림으로 서문을 통해 내려가야만 했다. 경사가 급하고 험한 눈길에 말들이 고꾸라CJ프레시웨이 주식
져서 몇 번이나 넘어졌다. 인조는 세자와 신하를 이끌고 나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갖추어야 했다.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머리를 3번 조아리고 9번이나 얼어붙은 땅바닥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를 행했다. 왕의 이마에는 피가 흥건했다고 한다. 전쟁 패배 의 대가는 언제나 가혹한 법이다.
세자와 왕자, 대신들이 인질로 잡혀갔바다이야기 공략법
고, 수십만 명의 선량한 백성이 인간 사냥을 당해 만주 땅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온갖 만행과 노역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어 갔거나, 고국으로 돌아오려면 속환금贖換金이라고 하는 큰돈을 지불해야 했다. 해마다 처녀 500명을 뽑아 청에 받쳐야 했으며 이를 채우지 못하면 곤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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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성문 앞에서 필자.


비운의 역사를 지나 동장대지위에 서면
성벽 길을 따라 걸으며 비운의 역사를 지켜봤을 노송 사이로 통곡 소리처럼 세차게 불고 있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조정의 논쟁과 싸움 속에서 우직하게 나라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과 민초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걸음을 내디딘다. 이윽고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수어장대를 거쳐 청량당에 도착한다. 청량당은 공사비 횡령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처단된 남한산성 축성공사 책임자 이희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희 장군은 죽기 전 자신의 죄가 없다면 매가 날아와 바위에 앉을 것이라는 유언을 했다. 그 후 과연 매가 날아와 바위에 앉아 슬프게 울어서 매바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것을 말한다. 옹성을 지나 동문에 도착했다. 동장대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쁜 숨을 여러 번 토해낸다. 치고 올라가는 맛도 있고, 헉헉대는 숨가뿐 소리도 있고, 쉬어가는 기쁨도 있다. 한 발 떼기도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이건만, 오직 이 자연의 숲을 보고 한 걸음을 더해 오른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동장대지에 올라서 멀리 벌봉을 조망하니 가슴이 탁 트인다.
북문 방향은 가파른 하산길이다. 능선 곳곳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우람한 나무들이 정승처럼 자리 잡고 있다. 야생 동물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이곳의 주인은 당연히 동물이다. 산이 낮다 하여 꽃향기가 옅지는 않다. 한꺼번에 터져 나온 꽃향기가 오히려 어지럽다. 꽃과 눈을 맞추어 '붕붕'거리는 벌과 동행한다. 햇살을 머금고 '살랑살랑' 일렁이는 초록 잎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만드는 낮은 숲은 고즈넉하다. 온갖 자극으로 부어 있는 마음이 사르르 가라앉는다. 이윽고 북문에 다다르니 깃발이 펄럭거리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